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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5/30 일요일인가 쯤에 새중앙교회 황덕영 목사님이 설교하신 것을 인공지능으로 텍스트를 발췌해보고 직접 수정한 글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나의 삶도 다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이신데, 오늘 예배를 통해서 이 주님의 통치 다스리신 가운데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고, 그는행 가운데 승리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구원하기로 계획하신 그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품게 하셨는데, 우리가 힘을 내서 기도하고, 또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그 영혼들이 주 말씀대로 구원 받는 놀라운 잔치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들,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 복음의 역사, 하나님의 통치의 역사는 나의 힘으로 이루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아서 이 땅에 성도로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하고,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성령이 임하면 능력을 받는다는 겁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래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예배 가운데 성령께서 충만히 역사하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증인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 다세대신과 통치 가운데 쓰임 맞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의므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의 은혜와 충만한 역사를 체험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할 때 많은 것들을 주십니다. 성령의 은사도 주시죠, 성령의 열매도 몇 개 하시죠, 하늘의 신령한 거, 땅의 기름진 거,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실 수가 있는데, 또 무엇을 주시느냐. 사도행전 2장17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오, 너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신다는 것은 이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말하는데, 성령이 임할 때 무엇을 주시느냐. 너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오, 너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의 은혜로 충만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 중에 예언과 환상과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나누는 이유는 우리가 읽은 다니엘에서 이 7장이 보면, 다니엘이 하나님으로부터 환상을 받았고 꿈을 꾸었고, 그 환상과 꿈은 예언적 메시지였다는 것이죠. 그럼 다니엘이 어떻게 예언과 환상과 꿈에 이 모든 것을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까? 다니엘은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한 자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에 모든 사람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다니엘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근데 다니엘만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 강림하시므로 이 교회 시대, 그 이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로서 주님께서 약속하셨듯이 내 영을 모든 육체, 특정한 부류의 어떤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육체, 예수의 일대기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이 내주하시고 충만하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보았던 이 예언과 환상과 꿈은 다니엘만 깨닫고 다니엘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모든 성도들이 알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예언과 환상과 꿈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것은 육적으로 못 풀어요. 성령이 없으면 성령에 주신 것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 자체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져 있는데, 진리의 성령께서 가르쳐주지 않으시면 어떻게 성경 말씀을 깨닫게 되겠습니까? 저는 오늘 다니엘 선생님의 말씀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성령의 은혜 가운데 충만한 이 예배를 통하여 이 주시는 이 환상과 예언과 이 꿈의 메시지를 깨닫고 이것이 우리의 삶의 큰 축복의 메시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 시간 드려지는 이 예배 가운데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성령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성령과 교통하는 예배라고 믿습니다. 그 예배만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겁니다. 영어 사자의 법에 하나님의 영의 신이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진리라고 했습니다. 영으로 예배드려야 돼요. 육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영으로 예배, 성령과 교통하는 예배, 성령의 임제, 성령의 어떤 강력한 역사가 나타나는 예배. 그리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진리되신 예수의 손께서 임제하시고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예배.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은 이 말씀, 이 예언과 환상과 꿈에 대한 말씀이 바르게 깨달아지고 바르게 적용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제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을 봐야 되는데 이 환상 내용 자체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운 구절이에요. 다니엘서가 1장부터 12장까지 있는데 다니엘서의 문을 열면서 첫 시간에 제가 이 개관식으로 이렇게 설명을 드릴 때 다니엘서의 앞부분 1장부터 6장까지는 사건, 이야기 중심으로 되어 있고 후반부 7장부터 12장까지는 환상 중심으로 되어 있다 이런 말씀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 다니엘서의 1장과 6장을 보면 여러가지 이야기들 중심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다니엘과 다니엘의 새 친구가 바벨론포로로 끌려갔던 이야기 바벨론포 왕궁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했지만 하나님께서 오히려 윤택하게 하시는 그 은혜를 누리게 됐고 그리고 지혜와 청명의 그 은혜를 받았던 그런 이야기들 그리고 누가 내사 왕의 꿈을 꾸었는데 다니엘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꿈을 해석하게 하셨던 이야기 다니엘의 새 친구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금신상에 절하지 않을 때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하셨던 이야기 또 많은 이야기가 있죠. 사자굴에 던져지는 것을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다니엘이 하루에 3번씩 기도할 때 이것이 빌미가 돼서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역전의 승리를 이루게 하셨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이 다니엘서 1장부터 6장까지 되어 있는데 7장부터 12장까지는 여러가지 상징과 비유와 그런 예언적인 어떤 묵시적인 내용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혹자는 그렇게 많다. 다니엘서를 나눌 때 6장을 넘어서 7장으로 넘어가면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만 가득하니까요.

그러면 66권 성경 중에 묵시와 계시의 내용 대표적인 성경 2권이 있다고 한다면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의 요한계시록입니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이 잘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확신하기에는 이 예언과 환성과 꿈의 메시지 이 상징과 비유 여러가지 이런 모습들 게시와 묵시에 대한 내용이지만 이 내용이 깊은 것만큼 더 깊은 그런 은혜와 능력과 축복의 메시지로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의 역사하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 내용을 봐야죠. 자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의 내용이 무엇인가 1절부터 나옵니다. 다니엘이 밤에 꿈을 꾸는 겁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받은 환상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자기가 만들어낸 꿈과 환상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과 환상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하여금 기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절 이하의 그 환상의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늘에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들어오면서 바다에서 네 짐승이 나와요. 근데 네 개의 짐승이 나오는데 첫째 짐승을 보니까 사자같은 짐승을 보는 겁니다. 환상 가운데 여러분 사자가 아닙니다. 사자같은 짐승이에요. 근데 등에 독수리 날개가 있습니다. 여러분 독수리 날개를 탄 사자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다니엘의 경험상 다니엘의 지식 안에서 보니까 이 땅에 존재하는 짐승은 아닌데 사자같은 거예요. 그 독수리의 날개 같은 것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굉장히 무서운 그런 짐승을 본 것입니다. 근데 첫째 짐승 다음에 둘째 짐승을 보는데 둘째 짐승은 곰같은 짐승인 거예요. 곰은 아닙니다. 근데 곰같아요. 근데 곰이 한쪽을 이렇게 들어 올리는 겁니다. 굉장히 자세가 독특한 뭐 이렇게 스포츠로 말하는 스모 이렇게 보면 이렇게 한쪽을 이렇게 들어 올리는 것이죠. 독특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곰같은 둘째 짐승을 보는데 이 사이에 갈빗대 세 개를 물고 있는 거예요. 아마 뭐 먹다 나온 것 같아요. 지금도 씹고 있고 그리고 많이 먹으라 이런 음성도 들리고 아주 하나의 갈빗대도 아니고 탐욕스러운 어떤 욕심이 가득한 어떤 그런 둘째 짐승을 본 것입니다. 근데 둘째 짐승을 지나서 이제 셋째 짐승을 보는데 셋째 짐승을 보니까 표범같은 겁니다. 표범이 아니에요. 근데 표범같이 생긴 짐승을 본 것입니다. 근데 자세히 보니까 표범의 등에 날개 셋이 있는 겁니다. 세 날개 셋이 있고 그리고 표범같이 생겼는데 머리가 네 개 머리가 네 개 정말 이상한 그런 짐승을 본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네 번째 짐승을 보는데 네 번째 짐승은 어디다 갖다 붙여 비유할 만한 동물이 없어요. 그래서 뭐 같다 이렇게 표현을 못해요. 뭐 사자 같다든지 곰 같다든지 표범 같다든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어야 되는데 이 땅에서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어떻게 그림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설명을 덧붙이는데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했다는 겁니다. 무섭고 놀라워도 매우 강한 네 짐승을 보는데 큰 쇠로 된 이빨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빨을 가지고 죽이고 완전히 부숴뜨리고 그리고 그 나머지 짐승들을 발로 짖밟는 겁니다. 근데 자세히 보니까 이 네 짐승에 뿔이 10개가 달려있어요. 10개의 뿔이 있는데 또 자세히 보니까 거기에 작은 뿔이 나오는데 작은 뿔이 나오면서 기존에 있었던 10개의 뿔 중에 3개의 뿔이 뽑히는 겁니다. 그 작은 뿔을 또 환상 가운데 자세히 보니까 그 작은 뿔에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달려있고 그리고 입이 있어서 큰 말을 한다는 도대체 이게 뭡니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괴물을 봤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제가 첫째 짐승, 둘째, 셋째, 넷째 짐승을 설명드리는데 우리 성도님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지금 예배 때 이게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지금 다니엘을 봐도 환상의 내용을 하고 있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이게 의미가 중요하잖아요. 왜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았는가? 왜 하나님이 환상을 주셨는가? 저도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고 또 묵상하면서 기도를 많이 하게 됐는데 우리가 읽지 않았지만 그 부분을 보면 다니엘이 환상을 보고 나서 마음에 근심하면서 번민했다는 표현이 두 번이나 나와요. 다니엘이 번민했다는 이 표현을 보면서 참 위로가 되더라고요. 환상을 보았던 다니엘이 번민하는데 설교 준비하는 제가 번민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제가 오늘과 다음 주에 두 번에 걸쳐서 이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이 다니엘이 보았던 환상의 내용을 가지고 오늘과 다음 주에 걸쳐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데 자 이게 해석이 중요한 거죠. 자 그런데 성경이 나오는 이 묵시에 대한 내용 이 계시에 대한 내용, 이 환상과 예언적 꿈과 이런 부분들을 우리가 다룰 때 방향을 잘 설정해야 돼요. 잘못 해석하다보면 여기서 이단들이 많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이 성경 안에 열쇠가 있습니다.

다니엘이 봤던 환상의 내용이 뭔지를 몰라가지고 곁에 선 자 중에 하나에게 묻습니다. 오늘 번민이 이제 뒷부분에 나오는데 물어요. 근데 그 곁에 선 자 중에 하나에게 물었는데 그 자가 누구냐면 다니엘의 8장과 9장에 보면 가브리엘 천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묻는 겁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냐. 그때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데 이 네 짐승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 다니엘서 7장 17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짐승이라는 것이 짐승 자체가 아니라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을 말한다는 것인데 여러분 왕을 말한다는 것은 나라를 말하는 겁니다. 예전에도 누군가 내에서 왕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누군가 내에서 왕에게만 주신 메시지가 아니라 누군가 내에서 왕이 다스리고 있는 왕권을 가지고 다스리고 있는 아무런 제국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네 짐승이 네 왕이라고 하는 것은 4제국, 4개 나라를 말한다는 겁니다. 자 그런데 이 짐승이 그 하늘에 내 바람이 몰려와서 바다에서 나와요. 바다에서 나오는데 이 비유와 상징으로 표현되어 있는 이 바다는 긍정적인 의미라기 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바다가 들어가면 좋은 의미, 뭐 일반적인 의미도 있지만 비유와 상징 가운데 굉장히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 살리심을 거부하는 어떤 영역 그것이 바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빛이 있으라 하시면 빛이 있었는데 이 창조하시기 전에 창세기1장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렇게 나옵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나왔는데 그 깊음이라고 하는 단어가 바다라는 의미에요. 그 어두움이 바다 가운데 있고 그 위에 수면 위에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셨다는 것이죠. 성경의 스올이나 무덤이나 음부, 지옥의 권세, 어둠의 권세 이것이 바다를 의미해요. 스올이나 음부 이것 자체가 심연, 어떤 깊은 바다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재미있는 구절들이 참 많이 있는데 성경의 마지막 성경이 요한 예수에게 보면 요한 예수의 21장에 보면 새하늘과 새 땅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 보게 하세요. 새 하늘과 새 땅, 이 세상에 이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가고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시는데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는데 처음 있었던 하늘과 땅은 없어지고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구요. 바다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해요. 이 바다라고 하는 것은 어둠의 번세가 장악하고 있는 하나님의 통지를 거부하는 그런 어둠의 어떤 세력들을 말하는데 거기서 네 짐승이 나왔다. 네 나라, 제국, 왕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럼 이게 굳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여러분이 다니엘서 7장을 해석하는데 아주 균형 잡힌 일반적인 그런 기독교의 역사가 있었던 것을 해석해 있습니다. 사실은 이 다니엘서 7장을 보면 다니엘서 2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보았던 환상과 그 꿈과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한 큰 신상을 꿈에 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해서 그걸 해석하게 하십니다. 큰 신상을 보는데 머리는 순금으로 되어 있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으로 되어 있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으로 되어 있고 종아리는 쇠로, 발은 쇠와 지름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깨닫게 하셔서 그 해석을 느부갓네살 왕에게 말하게 하시는데 이 순금이 느부갓네살 왕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머리가 바벨론 제국을 말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은에 대한 해당되는 것은 바벨론 제국의 다음에 나올 나라라는 거예요. 그 당시에 사람들은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 역사를 다 거쳐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걸 아는 겁니다. 은에 해당되는 나라는 메데 바사 제국이에요. 페르시아 제국이에요. 그리고 놋에 해당되는 나라는 어느 나라겠습니까? 헬라 제국이에요. 그리고 종아리, 쇠로 만드는 종아리에 해당되는 제국은 로마 제국이죠. 성경의 배경이 되는 바벨론, 메데 바사 제국, 헬라 제국, 로마 제국을 말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 그런데 손대지 않은 돌이 나와서 이 신상을 다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손대지 않은 돌이 점점 커지더니 태산을 이루고 온 세계에 가득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보았어요. 손대지 않은 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 다시 오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아직 다시 오지 않으셨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들과 제국들을 통칭해서 이 발, 진흙과 쇠가 섞여있는 이곳으로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환상, 이 꿈과 오늘 보물에 등장하는 다니엘에게 보이셨던 네 짐승의 환상이 너무 닮아있어요. 그 큰 신상의 금, 은, 놋, 쇠로 되어있는 이 재료들이 내 짐승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첫째 짐승, 사자같이 생긴 그 짐승이 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겠어요? 바벨론 제국이라고 우린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실제로 바벨론 제국의 대표적인 왕이었던 느부갓네살 왕, 에스겔이나 예레미야 설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을 사자나 독수리에 비유한 표현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벨론 제국의 유물들을 보면 참 신기해요.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 모양의 유물들이 여러 개 있다. 자, 그렇다면 둘째 짐승은 무엇이겠습니까? 자연스럽게 메베바사 제국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 이 탐욕이 있는 이 곰과 같은 나라. 근데 세 갈빗대를 물고 있다는 것도 이게 참 신기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데 페르시아 제국이 접목했던 새 나라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벨론과 시리아와 이지트, 혹은 바벨론과 그리고 아수르와 이집트. 그 세 나라를 점령했던 그런 곰과 같은 제국이 페르시아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럼 세 번째에 보았던 이 표본과 같은 제국은 어떤 제국이겠습니까? 헬라 제국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죠. 여러분 실제로 헬라 제국을 일으켰던 알렉산더 대왕은 얼마나 미첩하고 빠르게 세계를 접목해 갔는지 모릅니다. 10년 안에 지중해 연안에 있는 대부분의 지역들을 다 점령했기 때문에. 근데 재미있는 것은 이 표범 같이 생긴 이 짐승이 3~4개의 날개가 있고 머리가 4개였다고 그러는데 우리 역사를 통해서 아는데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다음에 헬라 제국이 4개의 나라로 쪼개지게 된 거예요. 참 신기하죠. 자, 그러면 네 번째 나라는 어떤 나라겠습니까? 우린 로마 제국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강력한 이빨을 가지고 먹어버리고 죽이고 부서뜨리고 짖밟는 로마의 철의 어떤 그런 정치를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근데 그 다음에 보았던 그 환상이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살아있는 나라의 완성에 대한 환상이기 때문에 사실은 넷째 짐승은 로마 제국만이 아니라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존재하는 어떤 나라를 말할 수도 있고 그 나라를 통치할 수도 있습니다. 이 넷째 짐승에 대한 부분은 제가 다음 주에 조금 더 우리 성도님들과 나누기로 권합니다.

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 다니엘이 첫째, 둘째, 셋째, 넷째 짐승 이렇게 다 봤는데 그래, 넷째 짐승은 뭐 로마 시대 이후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나라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장차 나타난 나라일 수도 있다고 한다면 넷째 짐승은 차차 하더라도 그럼 첫째 짐승, 둘째, 셋째 환상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니, 오늘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나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데 도대체 첫째, 둘째, 셋째 짐승은 다 옛날 얘기잖아요. 옛날에 지나갔던 제국들인데 그게 지금 내 삶 가운데 이 환상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떤 메시지가 있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어떤 메시지가 있습니까? 그럼 어떻게 보면 이 세 개의 짐승들이 그 제국과 그 나라가 지금 나의 삶과 상관이 없다는 게 메시지에요. 그 강력한 제국들이 다 지나갔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 제국이 바벨론을 말하든 페르시아를 말하든 그리고 헬라를 말하든 뭐 넷째 짐승이 로마를 말하든 성경에는 어떤 특정한 제국이나 나라를 특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추정할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나라는 다 지나갔다는 겁니다.

엄청난 권세와 엄청난 전통과 문화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었던 그 제국들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습니까? 그 제국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의 스토리가 얼마나 많겠어요. 같이 만나고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직장생활하고 꿈을 꾸고 성공하고 세상을 살아갔던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 제국들의 스토리인데 근데 다 지나갔다는 겁니다. 지금 오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 가운데 바벨론 제국이 무슨 의미이며 페르시아 제국과 헬라들하고 로마 제국이 직접적으로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아무 영향을 못 주고 그냥 지나간 제국이잖아요. 여러분, 이게 중요한 메시지라는 거죠.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지나간다는 겁니다. 이 세상의 통치,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지나간다. 이 세상의 정치, 이 세상의 나라, 그냥 무너지는 나라예요. 지나가는 나라예요. 지금 다니엘을 통해서 이것을 보여주시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의 삶에 나오는 수많은 문제들, 이 짐승과 같이 압박하는 우리가 정글 같은 이 세상을 살고 있는데 우리는 영원하지 않은 것에 아둥바둥하면서 집착하면서 살 때가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 환상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그거 다 지나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원하지 않은 어떤 것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내 짐승의 환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환상이에요. 우리가 본 9절과 10절에 나와 있는데 9절 이하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 같이 다시 한번 읽어보실까요? 시작, 내가 보니 왕부자가 보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귀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모자는 불꽃이요 그의 앞에는 타오르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 데 책들이 펴버렸다. 자 앞에 제국 나라들 그 짐승들은 다 지나가는데 여러분 4개의 짐승 그 시대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줄 알고 결국 다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니엘의 또 한상을 보는데 왕좌가 놓여있는 겁니다. 왕의 자리가 있는데 옛적부터 항상 계시니가 좌정하셨는데 옛적부터 항상 계시니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분이 누구신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옛적부터 항상 계시니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알파와 오메가 창세적부터 영원적부터 영원 끝까지 마지막 심판 때까지 존재하시는 그 왕의 왕 되시는 주권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 좌정하고 계신 것을 환상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고룩하고 순렬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불과 같이 강력한 권수와 통치권을 가지고 그를 섬기는 자가 천천이요 그 앞에 모시는 자가 만만이라 그 모든 백성들이 주님을 섬길 수밖에 없고 모실 수밖에 없고 예배하고 경배할 수밖에 없고 그가 심판을 베푸시는 거예요. 책대로 놓여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주로 오시는 다시 오시는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를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심판을 베푸시는데 그 주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만 그 심판 주 되시는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계시는 그 주님 앞에서 주님을 믿지 않는 영혼들은 영원한 멸망을 받는 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 영원한 주권과 이 통치권을 가지신 심판 주 되시는 주님을 환상 가운데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니엘환상을 통해서 우리 예수님은 메시지가 있지 않습니까? 영원하지 않은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주님을 위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간다는 메시지가 있는 겁니다.

이런 과거에 에카도르에 아오카 부족에서 복음전하다가 순교당한 짐엘리엇이라고 하는 선교사님이 남긴 아주 귀한 말이 있죠.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는 영원한 것을 위하여 영원하신 주님을 위하여 살았던 인생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 다 지나갑니다. 우리 질병도 지나가고 우리 고민거리도 지나가고 우리의 일 평생을 살아가면서 과거에 고민했던 것들 다 지나갔잖아요. 지금 경험하고 있는 모든 문제와 아픔과 슬픔 이 모든 것들 다 지나갔느냐 주님이 영원하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왜 이 내 짐승의 환상을 주시냐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주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와 있는 그 포로기의 시대를 보내고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 맞는가? 우리 민족을 돌보시는 것 맞는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맞는가?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 맞는가? 이런 모든 그 근심과 두려움과 아픔과 그런 불신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소망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희망의 메시지를 주시는 거예요. 집합 들어오시는 항상 계신 주님이 계시는데 모든 너의 삶을 갚아주실 것이고 너의 모든 삶을 하나님이 돌보실 것이고 책임져 주실 것이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라는 이 메시지를 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주님의 통치, 주님의 다스리심 이 전세계, 이 인류 역사를 경영하시고 통치하시는 주님을 우리가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의 삶의 다가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과 문제들과 아픔들 여러분 이길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자 그런데 오늘 우리 선배님들과 같이 나누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따로 있습니다. 이 다니엘이 보았던 이 네 짐승의 환상이 다 은혜가 돼요. 그리고 이 신앙생활을 할 때 정말 우리는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짐승들, 이렇게 정말 신앙의 바퀴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얼마나 많은 짐들과 부대낌과 고민과 어려움들이 있습니까? 문제없는 인생이 없습니다. 자 그런데 주님께서 장차 심판하시고 주님께서 장차 갚아주실 것이고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고 그때 심판하시면 우리의 모든 삶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그렇게 하실 것이다 라는 메시지도 우리 가운데 소망을 주지만 더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이냐? 장차 심판주로 오시는 우리 주님께서 오늘 이 시간 나의 삶의 자리에 임하신다는 것. 장차 오시는 주님 미래적인 사건 만이 아니라 오늘 예배하는 자리에 이 세상을 믿음 가지고 주님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나의 삶 가운데 주님은 좌정하신다는 것. 그러니까 미래적 사건, 우리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소망이 있지만 현실의 능력이 있는 것. 주님께서는 미래에 다시 오실 것이 분명하지만 내 삶 가운데 함께하고 계시고 내 삶을 지금 돌보고 계시다는 것. 전 다니엘서 1절부터 10절까지 보면서 모든 구절이 다 은혜가 되죠. 내 짐승에 대한 이 내용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내 짐승이 도대체 무엇을 말할까? 연구도 하고, 공부도 하고, 묵상도 하고, 준비도 하고 다 하죠. 그 다음에 보았던 예전부터 항상 계신 우리 주님이 왕좌에 좌정하셔서 마지막 심판을 이루시는 그 장면이 너무 은혜가 되죠. 그런데 더 큰 은혜가 되는 구절이 있었어요. 말씀을 준비하면서 너무나 큰 은혜와 위로와 격려가 되었던 구절이 숨어있더라고요. 그 구절이 어디에 있었냐 하면, 오늘 본몬의 첫 부분에 나옵니다. 오늘 본몬의 1절에 보면 바벨론 밸사살 왕 원년에. 이 구절이 너무 큰 소망과 위로와 힘이 되는군요. 바벨론 밸사살 왕 원년에. 원년이라고 해서 밸사살 왕이 통치하기 시작했던 첫 해를 말하는 거죠. 여러분 밸사살 왕 기억하세요? 밸사살 왕 아시죠? 모르시는 걸로는 안돼요. 설교를 다시 할 수 없고. 여러분 밸사살 왕 원년의 이 환상을 봤다는 겁니다. 그런데 배사살 왕이 다니엘서 5장에 나와요. 밸사살 왕이 마지막 죽기 전에, 마지막 날에 있었던 일. 바벨론 제국이 망하기 직전에, 메네바사 연합군이 바벨론 도성을 애워싸고 있었을 때 밸사살 왕이 무엇을 했죠? 하나님한테 메어 달리고, 뜯고 기도해도 모자를 판에 귀족 천명을 모아 술잔치를 벌이고, 성전을 가져온 그릇에다가 술 따라 마시고, 하나님을 모욕하고, 여러분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왕궁 벽면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글씨를 쓰시는데, 메네메네 대겔 우바르신 다니엘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 내가 세바역으로 무게를 달아보니까 무게가 안 나가서 나라를 쪼개버렸다는 겁니다. 그날 밤에 바벨론 제국이 망합니다. 심판당해요. 그리고 그날 밤에 배사살 왕이 죽습니다. 심판당합니다. 자, 지금 5장과 6장을 넘어서 지금 우리가 7장을 보고 있지만, 7장부터 12장이 환상의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7장이 지금 되어 있지만, 그러나 연대기적인 시간평을 본다면, 다니엘이 이 네 짐승의 환상을 본 것은 5장 앞이라는 거예요. 다니엘이 이 네 짐승의 환상과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주님의 심판으로 오시는 이 환상을 본 다음에 이루어진 일이, 밸사살 왕이 죽고, 바벨론 제국이 망하고, 그 다음에 메네바사 제국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러분 장차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 맞지만, 바벨론 제국은 술잔치벌이는 그날 심판받았어요. 배사살 왕, 그날 밤에 죽은 겁니다. 심판당했습니다. 장차 주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신 것이 맞지만, 다니엘은 그날 주님의 통치를 경험한 거예요. 내 삶의 자리에 역사하시는, 내 삶의 현장에 역사하시는 주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5장을 넘어서 6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환상을 본 다음에 있었던 일이, 메네바사 제국의 다리오왕 시절에 엄청난 박해가 있지 않았습니까? 다리오왕 외에 다른 신에게 전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이 왕의 도장이 지킨 것을 알고는, 여러분 이런 신앙의 핍박이 어디있습니까? 진짜 정글같아요, 그 왕국이. 엄청난 짐승들의, 괴물들의 공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영적인 압박과 공격이 있습니다. 자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합니까? 그 가운데서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에 3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겁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빌미가 돼서 사자발에 던져집니다. 진짜 사자굴, 정글, 그 괴물가로때 둘러싸여있는 거예요, 짐승들 가운데. 그런데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때문에 나중에 구원하십니까? 나중에 심판하려고 다중 역사하십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자발 안에 다니엘이 있는데 그 가운데 주님이 임지하십니다. 그 현장 가운데, 나중에 오신 주님이 맞지만, 그 삶의, 하나 앞에 엎드리는 다니엘의 삶가운데, 그 삶의 자리에 주님이 함께 하셨던 것이죠. 주의 사자를 보내주셔서 사자의 입을 막아주세요. 그리고 다니엘을 건지시고, 다니엘의 대적을 그 자리에서 심판하십니다. 여러분 장차 중의에 다시 오신 건 맞습니다. 인류적 종말이 있습니다. 지구적 종말이 있습니다. 주님은 다시 오세요. 하나님의 때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장래일만이 아니에요. 오늘 나의 삶과 어디에 주님은 임재하시는 거예요. 주님 내 삶에 함께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모하는자 삶 가운데, 하나님의 믿음으로 바라보는 삶 가운데 하나님을 그렇게 역사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다니엘만 그것을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의 새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풀무불 들어갔을 때 이런 신앙의 박해가 어디 있습니까? 금신상 절하지 않는다고, 이 정글 같은 괴물이 판치는 그런 신앙의 박해가 있는 삶의 현장에서 신앙을 지키겠다고 풀무불에 들어가잖아요.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도와주십니까? 나중에 심판하십니까? 나중에 임재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통치하시고요. 나중에 그리 하시지 않은 믿음을 가지고 죽었을 수도 있어요. 뭐 순교당하고 천국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새 친구의 삶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은 그 풀무불 안에 주님께서는 임재하십니다. 나중에 아니라 그 나중에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삶의 자리한복판에 임지하셨다는 것.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을 보호하셨다는 것.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고 불타는 냄새 나지 않고 철저하게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의 세면도 다시 오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임지하고 계시는 줄을 믿습니다. 다니엘이 예수살렘 향해서 나는 성전을 향해서 기도를 했는데 여러분 성전을 향해서 왜 기도했다고 말씀드렸습니까? 성전 하나님과 만나는 현장이잖아요. 하나님을 사모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람들이 성전에 가서 하나님의 그 은혜를 누리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현존을 느끼는 자이였습니다. 그 성전으로 들어가는 순간 새로운 디멘션 새로운 차원으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자예요. 내 발에 신을 걷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그 순간에 주님의 도우시고 통치하시고 역사 쓰는 기적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서의 나오는 인물들만이 아닙니다.

여러분 성전이 과거의 성막이었고 성막에서 만나는 주님이 그 전에는 회막에서 만나주셨고 여러분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런 삶에 살았습니다. 여러분 회막에 모세가 들어갈 때 하나님과 친구와 같이 대변하여 교제하듯이 그렇게 대화했다고 하네요. 하나님의 임재 여러분 야곱은 광야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인생을 경험합니다. 밤에 꿈을 꾸는데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 위에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라 하는 거예요. 야 여기가 하나님의 집 아니냐. 하나님의 인생을 경험하니까 밷엘이라고 이름을 짓는 겁니다. 그럼 나중에 일이 아닙니다. 미래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중에만 은혜 베푸시는 것이 아니에요. 나에게 오늘 광야 생활을 하고 있는 나의 삶 가운데 베풀어지는 은혜가 귀한 것입니다. 야곱이 나중에 고향에 돌아올 때 그 무거운 짐을 쥐고 야복판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싸대기 하는데 하나님의 인생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봐요.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의 브니엘이라고 하는 그 지명이 거기에 붙여진 거예요. 여러분 오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다니엘을 통해서 주시는 환상을 우리 가운데 주시는데 옛적부터 항상 계신 주님, 지금도 살아계시고 지금 우리의 삶에 함께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지금 어려움 가운데 있는데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주신 환상을 통해서 격려하시고 위로하시고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근데 다니엘을 통해서만이 아니고 이미 다니엘과 세 친구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기도 전에 약 백여 년 전에 회복에 대해서 말씀해 주신 선자 중에 하나가 이사야이었습니다. 이사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기도 전에 그 이스라엘백성을 돌보시고 함께하시고 역사하시는 이 하나님의 일들을 미리 예언했어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 중에 이사야 43절 18절 이하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들이 그 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일을 해마리니 이제 나타날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의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새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길을 내리고 사막에 강을 내리는 것과 같이 너희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지만 너희들을 출발로 하는 새 일을 행하시는 이 회복의 은혜를 줄 것이다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장래의 일들 그 소망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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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사야가 이렇게 장래의 일을 말을 하는데 이사야 자신은 지금 주님의 임재를 누리면서서는 하고 있었어요. 주님앞에 부름받는 그 순간부터 주님앞에 소명을 받는 그 순간부터 그 장차 이루실 하나님의 그 역사 미래적 사건만이 아니라 오늘 나의 생전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사야가 소명을 받았을 때 그 장면이 이사야의 6장이 나옵니다. 이사야 6장 1절에 보면 다니르가 보았던 환상의 내용과 비슷한 장면이 나와요. 우시아 왕이 죽던 해 내가 본 즉 이사야도 보는 겁니다. 환상 가운데 죽던 해 내가 본 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해요. 우시아 왕이 죽던 해는 유대의 나라에 있어서는 굉장히 큰 위기에 떼었습니다. 왕이 죽었다는 것은 엄청난 위기잖아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로 우시아 왕과 이사야 선자는 친척관계였다고 합니다. 먼 관계가 아니라 가까운 관계여 보니 또 얼마나 슬픔이 컸겠습니까. 그리고 이사야 선자는 왕을 위하여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어요. 왕이 죽었다고 하는 것은 대적자들로부터 다른 나라들로부터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슬픔과 이 고민과 이 고통과 아픔 이 어려움의 문제를 가지고 이사야는 어떻게 했냐. 성전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시아 왕이 죽던 해 성전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주님의 임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보좌에 주님께서 앉으셨는데 주의 옷자락이 온 성전에 가득합니다. 주의 옷자락이 주님의 임제가 그 성전 안에 가득한 거예요. 나중에 역사하시고 나중에 임하시고 나중에 다시 오실 신발들로 오실 그 주님만이 아니라 성전의 사모함으로 그 은혜를 사모하며 들어갈 때 그 성전에 임제하시는 주님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예배가 그러한 주님의 임재와 가득한 예배가 될 수 있기를 주의 눈으로 축복합니다.

성전에 주의 옷자락이 가득한데 슬합천사로 환상 가운데 보는 겁니다. 슬합천사가 여섯 날개가 있는데 두 날개는 눈을 가리고 왜냐하면 주님이 너무 찬란하시네요. 영광 가운데 계시니까 눈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 날으면서 이 슬합천사들이 주님 앞에 찬양을 하는데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에 이어 와요. 온 땅에 주의 이름이 충만합니다. 주의 영광이 충만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양하는 주님의 강력한 임제를 이사야가 참았던 것입니다. 그 주님의 강력한 임제 가운데 자신의 죄가 드러나는 거예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말을 잘못했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정말 악한 말을 했구나. 하나님 기뻐하시다는 말을 하고 다녔구나. 이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전혀 알지 못했던 그 죄가 드러나는 겁니다. 주님의 임제 가운데. 그 고민하면서 힘들어할 때 슬합천사 하나가 재단에 띄어있는 숯불 하나를 가져다가 이사의 입에 대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운성이 들리는 거예요. 내 악이 저려졌고 내 죄가 사여졌네. 심판이 되시는 주님 앞에서 죄가 사암받는 놀라운 자유암의 주님의 임제 가운데 자유암과 평감과 그 위로와 성함과 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때 하나님의 운성이 들리죠. 주께서 이러시는데 내가 누구를 버리면 누가 우리를 왜 악하여.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어. 어머니 나를 보내소서. 여러분 이사야가 주님의 임제를 경험하면서 그 은혜를 누리면서 살고, 그 은혜를 누리면서 살면서 주님 주신 예언적 메시지를 전하면서 발만 펌으로 끌려가기 시작했었는데요. 소망의 메시지를 그 오래전에 전달했던 인물이 되었던 것이죠. 여러분 현재적이에요. 주님의 임제는 현재적입니다.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통치가 있는데 나의 삶을 지금도 다스리시고 함께하여 주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이 내 짐승을 보고 무섭고 놀랐고 그리고 두렵고 이 강한 짐승을 보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임제를 경험하면 이 두려움이 다 물러가고 주님의 임제에 따르면 모든 삶이 회복이 되는 거죠. 우리가 잘하는 말씀이죠. 이사야 41장 10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이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합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됩니다. 내가 너를 굿새기하니라. 참으로 너를 부탁합니다. 참으로 나의 위로를 보는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럼 지금 눈물의 걸작이를 지나가고 어려움과 아픔과 고민 가운데 있는 우리 성돌인들 각자 저마다의 상황이 다르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좌정해 주셔서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으시고 새해의 힘을 주시고 승리의 역사를 확대해 주실 간절히 추천합니다. 오늘 말씀 마무리하면서 다니엘이 내 짐승의 환상을 보았는데 그럼 그 이후에 다니엘은 어떻게 살았는가? 참 놀랍게도 다니엘서 7장 바로 앞부분 다니엘서 6장 마지막 28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더 뒷부분이죠. 환상을 본 다음에 다니엘의 삶을.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사랑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실패하고 무너지고 아픔만은 슬픔만은 그 인생에서 허우적거리며 살다가 나중에 천국에 입성하고 그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은 그 임재를 누리면서 삶의 자리에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주님과 함께 형통한 승리 인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 우리 온 교회가 주님의 인재를 누리는 예배의 자리에요. 기도의 자리에요. 상호함의 자리에요. 주님의 뜻을 이뤄가는 자리에요. 영원하지 않은 세상을 붙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주님을 붙들고 그 인재 가운데 아름답게 형통의 인생으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추구원합니다. 오늘 주의 말씀을 우리 믿음으로 받으면서 함께 고백하며 찬양하겠습니다. 지읒이 높으신 주님의 지성성으로 들어갑니다. 찬양인데 여러분 이 예배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고 계세요. 나중에 미래적인 소망이 아니라 그것만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에 살아계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주님께서 나의 삶에 함께하고 계시고 우리 삶을 돌보시고 함께하세요. 그 은혜를 삼아 하나님 내가 정말 영원한 주님을 위하여 승리하면 내 삶이 온전하게 함께 들어주는 그런 복잡한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사랑 이 믿음을 가지고 함께 고백하며 찬양하며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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